과학적 질문, 신학적 답변강종수 목사본문: 마태복음 19:23-2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아멘)
어느 부자 청년이 영생에 관해 질문하다가, 자신의 소유를 나누라는 주님의 말씀에 물질이 아까워 떠나갔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충격적인 교훈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바늘귀'**는 예루살렘 성의 작은 문을 가리킵니다. 밤중에 부득이하게 성을 드나들 때 사용하던 이 문은 낙타가 등에 짐을 가득 싣고는 결코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즉, 물질의 욕심에 매여서는 결코 영생의 문에 들어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당혹스러운 비유 앞에서 제자들은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세상의 과학적·인본적 질문에 대해 주님이 주시는 **'신학적 답변'**이 무엇인지 나누고자 합니다. 1.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 (인본주의적 질문)당시 제자들은 병들고 가난하면 저주받은 것이고, 부유함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구약적 신앙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부자가 천국 가기 어렵다"는 말씀에 몹시 놀라 질문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행위)을 하겠습니까?"(요 6:28)라는 질문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윤리적 행위'**나 **'물리적 조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방법: 인본주의적 철학, 심리학, 긍정주의, 적극적 사고방식 등으로 문제를 풀어보려 합니다. 교회의 실패: 유럽과 서구 교회의 몰락은 세상의 과학적 질문에 대해 복음이 아닌 심리학이나 문화적 대안으로 응수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철학적으로 전도하려다 실패한 것처럼, 복음 대신 '칭찬'이나 '웃음치유' 같은 인본적 대안을 내놓는 것은 진정한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경고합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2. 하나님의 편에서 신학적으로 답하십시오과학과 철학은 그 시대에만 유효한 실용적 가치일 뿐입니다. 인본적 대안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며, 또 다른 변명을 찾아 헤매게 만듭니다. 인생의 정직한 답은 사람에게 없습니다(롬 3:4). 사람은 모두 죄인이며 영적인 맹인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누가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 주님은 가장 확실한 신학적 답변을 주셨습니다. 이 답변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사실적인 역사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말씀이 우리의 모든 염려에 대한 실제적인 해답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답을 얻어야 합니까?답을 얻으려 할 때,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방식을 기대해야 합니다.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결정하면 됩니다(딤후 3:15-16). 성령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며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엡 1:17). 은밀한 역사를 신뢰하십시오: 부르짖을 때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십니다(렘 33:3).
세상의 합리적인 질문 앞에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세상은 하나님과 내세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모든 수수께끼를 푼 우리가 저들에게 질문과 답을 동시에 주어야 합니다.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 모든 답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질문에 **'신학적 답'**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