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 2:11-13)
국민일보에 실린 임용택 목사님의 글입니다.
잘 들어보기 바랍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을 보면
트래비스와 개럿이라는 두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둘은 똑같이 나무토막 하나와 칼을 받아서 열심히 나무를 깎았다.
얼마 후 두 아이 앞에 놓인 결과는 크게 달랐다.
트래비스 앞엔 멋진 배가 있었지만 개럿 앞엔 나무 조각만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다.
트래비스는 배를 만들겠다는 목적을 갖고 나무를 깎았지만
개럿은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나무를 깎았기 때문이다.
목적 있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의 결과는 크게 다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바른 목적을 갖고 사는 것이다.
아더 밀러가 쓴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윌리 로만은 자신이 사는 목적을 세 가지로 정했다.
장사를 크게 하는 것,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
자식들이 자기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하나도 이루지 못한 로만은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는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사셨어.”라고 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존재다.
하나님 영광이라는 바른 목적을 갖고 살 때 진정으로 행복하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목적을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그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물며 목적도 없이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일하다가는 더욱 성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목적을 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목적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바르지 못하면 공연한 데 힘을 쏟는 것이니
아무리 그 일이 성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바른 목적을 바로 정하고 그 성취를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욥의 세 친구가 나옵니다.
바로 엘리바스와 빌닷, 소발입니다.
이 세 친구가 욥을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욥은 견디기 힘든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많던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사랑하던 자식들도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 자신도 종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 고름이 생기고 또 얼마나 가려웠던지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욥의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욥의 친구들이 욥을 방문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난을 당하여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들의 방문 목적이 악한 의도는 아닌 것 같죠?
그렇습니다.
이들은 욥을 위로하려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욥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선한 목적을 세우고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 때 선하고 의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해야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목적과 계획을 세우면 틀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선하고 의로운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도가 앞서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과 같이 고난 중에 있는 친구를 위로할 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아니면 주변에 있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도 정하여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이것뿐이겠습니까?
예배를 빠뜨리지 않기로 결심할 수도 있고,
믿지 않는 친구들을 주님께 인도하려는 작정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마음에 선한 목적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십니다.
말씀을 보고 듣는 중에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
늘 기도하고 또 말씀을 가까이하며 선한 목적을 가진 일을 많이 하기 바랍니다.
주님의 자녀답게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렵고 각박한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욥의 세 친구를 보십시오.
그들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처음 7일 동안은 욥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울며 겉옷을 찢고 티끌을 날려 머리에 뿌리면서 욥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 이들이 함께 앉아 슬퍼하는 모습만으로도 욥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든든하게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욥에게 끝까지 위안을 주거나 힘이 되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7일을 지나면서 욥을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욥이 무언가 잘못을 했기에 그런 고난이 오지 않았을까 하고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욥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비판했습니다.
이때 욥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가족도 재산도 모두 잃고 몸까지 성치 않은데
믿었던 친구들까지 자신을 죄인으로 취급하며 비난합니다.
말 그대로 친구들의 말은 비수가 되어 욥의 마음에 잔인하게 꽂혔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들의 비판과 비난은 욥에게 더욱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세 친구들이 욥을 찾아온 목적은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 목적을 잊어버리고
욥을 비난하고 정죄함으로써 욥에게 고통과 상처를 더하고 있습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이 나았습니다.
그들은 선한 목적으로 욥을 찾아왔지만,
어느새 욥을 괴롭히고 고통을 더하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선한 마음과 목적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도 중간에 그치거나 목적에 어긋나게 되면, 아니한 것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욥의 세 친구의 행동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들은 차라리 욥을 위로하려고 찾아오지 않는 편이 나았습니다.
따라서 선한 목적을 가진 일일수록 끝까지 이루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중간에 그만두거나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현명한 농부는 추수할 때까지 끝까지 땀을 흘립니다.
포도의 열매가 조금 맺히고 익어 간다고 마음을 놓고 보살피지 않는다면,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지막까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 항상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욥의 세 친구도 자신들이 욥을 찾아온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다면
욥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끝까지 욥을 위로하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욥의 친구들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언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하는 목적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가더라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더라도 “내가 왜 이 공부를 하지?” 하고 자신을 일깨워야 합니다.
남들 다 간다고 거름을 지고 장에 갈 수는 없잖아요.
신명기 6장 8절과 9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그 목적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자신에게 묻기 바랍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지? 하며 말입니다.
기도하며 주님께도 여쭙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무엇이죠? 하며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님께서 그 목적을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끝까지 목적한 바를 이루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빠질 위험성도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바로 세워져 있지 않으면, 우리의 삶 자체가 실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목적이 바르지 않은데 어찌 작은 목적이나 목표가 온전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과연 우리 인간의 근원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만드셨을까요?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하여,
달리 표현하면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일과 목적도 여기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란 대전제 하에
다른 계획과 목적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 위한 선한 목적으로 욥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을 망각하고
오히려 욥을 비판하고 정죄함으로써 욥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선한 목적을 가진 일은 많이 할수록 바람직하겠지만,
끝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 목적이 변질되어 다른 길로 가서도 곤란합니다.
그러니 언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목적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란 사실을 꼭 기억하며
모든 일을 계획하고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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