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설교

sms05
제목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렘 8:4-5)2026-02-01 12:32
작성자 Level 1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8:4-5)

 

 

김장환 큐티 365”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철새들은 계절에 따라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귀소본능이라고 불리는 철새들의 능력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아직도 많은 조류학자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비갈매기는 생후 6주밖에 되지 않아도 따뜻한 곳을 찾아 본능적으로 만 칠천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정확히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면 다시 북극으로 정확히 돌아갑니다. 새들의 이런 본능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지 않으면 날이 추워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동물들을 창조하면서 철새들을 위한 법칙을 주셨고 그것을 새들은 계속해서 기억하며 생존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새들이 먼 길을 떠났다가도 결국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주님께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였는지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그 품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이제 오늘 말씀을 보면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떠나면 돌아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을 떠나 그 품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애타고 안타까울 일인데, 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여 그분의 백성으로 삼으신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 품을 떠났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실까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함께 있으면서 이것도 먹이고 저것도 먹이고 싶은데, 좋은 것은 모두 주고 싶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님의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요?

 

여기서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들이 과연 어디로 떠났다는 말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거짓을 고집한대요. 과연 그들이 고집하는 거짓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상이 아닐까 합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이나 아세라를 포함한 각종 거짓 신들, 혹은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풍습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각도를 달리해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고 의지하던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 같은 이방 나라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웃에 있는 강대국인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했습니다. 어느 한 순간 잠시가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떠나 물러갔다고 할 만큼 줄기차게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시던 하나님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평안한 삶을 누리게 하신 하나님이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을까요?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을 다 멸절시키고, 그들과는 어떤 관계도 맺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잔인한 것 같죠? 하지만 그렇게 명령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방 나라들을 남겨두고 그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들의 유혹과 영향을 받을 염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도 세월이 흐르면 그 마음이 다소 느슨해질 수 있고, 그래서 그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들이 섬기는 우상도, 그들이 행하는 풍습도 들어와 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예 그들을 멸절시키고 어떤 관계도 맺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유지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과의 관계도 단칼에 끊지 못하여 서로 교류하며 혼인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따르는 우상이나 풍속도 이스라엘 땅에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35절과 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안타깝지만 바로 이게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철저하게 지켰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은 비켜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모든 명령을 다 이행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 정도까지 해도 될 거야 하는 느슨한 마음은 곤란합니다. 2% 부족하면, 부족한 그 2%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마음을 놓지 말고 경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실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우상숭배 말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된 것은 이웃의 강대국들을 믿고 의지한 것입니다. 애굽이나 앗수르, 바벨론이 그 대표적인 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선지자들을 보내 그런 나라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촉구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이웃 강대국들을 의지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도,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것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망령스럽게도 하나님이 덜 미더우니 현실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강대국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웃 나라를 의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요? 또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데, 그들이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이웃 나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힘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허수아비와 같은 나라에만 눈길이 머물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곁에 우물을 두고서도 목말라하며 광야로 뛰쳐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무지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불신에 너무나 화가 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힘과 권능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그 품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문제가 생기면 이웃의 강대국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 하루하루 멀어져갔고, 돌아올 기약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한탄하시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도록 할게요.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한탄하시며 말씀하시는 뜻이 어디에 있을까요? 말 그대로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을 둔 부모님처럼 답답한 마음에 하는 탄식에 불과할까요? 그것도 아니면 하도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니 따끔하게 혼을 내시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런 뜻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하나님의 진심은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봐라. 사람이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고,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기 마련이다. 어째서 너희들은 날마다 내게서 멀어져 가고 돌아올 줄 모르느냐? 이제는 제발 고집 그만 부리고 내게로 돌아오너라.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닐까 합니다.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하나님의 진심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힘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끝내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을 치시고 그 백성을 뿔뿔이 흩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 땅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를 드신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그들이 나중에라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민족의 압제하에 고통스럽게 사는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이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이방 나라들을 따랐구나. 우리가 스스로 복을 걷어차고 죄 가운데 살았구나. 이렇게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꼭 맞아야만 정신을 차리는 미련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돌아오지 않은 것보다는 낫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품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잘못된 길을 간다면 결코 보고만 계시지 않습니다. 그 길이 멸망의 길인 줄 뻔히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가만히 계실 수 있겠습니까? 탄식 가운데 우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경고하실 것입니다. 때로 매도 드실 것입니다.

여러분, 힘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있는 것이 최선입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받는다면 즉시 돌아오기 바랍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마지막으로 호세아 141절 말씀을 함께 읽으며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