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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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거짓을 말하는도다 (렘 43:2-3)2026-02-15 12:53
작성자 Level 1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43:2-3)

 

 

햇볕 같은 이야기란 사이트에 실린 김이봉 목사님의 글입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니 잘 들어보기 바랍니다.

내가 개에게서 믿음을 배우자고 하면 제목만 보고도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음미해봐야 할 말이다. 우리집에서 애완견 한 놈을 어릴 때부터 정성으로 키웠다. 그놈은 나를 얼마나 따르는지 하루에도 열 번이건 스무 번이건 볼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새벽 기도회를 마치고 들어오는 기척이 나면 그때부터 야단이다. 어서 빨리 누우라고 뱅뱅 돌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내가 누우면 가슴에 올라와 자기의 목을 비비며 어떻게나 좋아하는지. 그러는 게 매일 매 순간 한번도 변함이 없다.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 세계는 이 강아지에 비하면 얼마나 이중적이고, 얼마나 가식적인가! 앞에서는 좋은 척하고 돌아서서는 욕하고 입을 삐쭉거린다. 자기에게 좋게 하면 좋다고 하고, 조금이라도 불리하다 싶으면 모두들 싫어한다. 자기를 좋다고 해야 좋아하고 진심에서 하는 충고나 고언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크리스천들도 말씀으로 책망하고 권고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변명하고 심하면 교회를 떠난다. 과연 이 강아지만한 믿음이라도 가진 자를 몇 명이나 볼 수 있을까?

어떻습니까, 여러분! 흔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을 하죠?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 그만큼 고약하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이익을 따지고 자기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거부를 합니다. 설혹 바르고 의로운 길이라 하더라도 손해가 될 것 같으면 애써 외면합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강아지의 순수한 모습과는 비교가 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기로 하겠습니다.

주후 586,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명맥을 유지하던 유다도 드디어 바벨론에게 멸망합니다. 이때 바벨론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왕궁을 포함한 크고 작은 건축물이 불에 타서 사라졌고, 성전도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또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포함하여 많은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나아가 느부갓네살은 힘이 없고 가난한 일부 사람들은 그 땅에 남아 살도록 하면서 그들을 다스리는 책임자로 그다랴란 사람을 임명했습니다.

그러자 바벨론이 무서워서 몸을 피하였던 일부 사람들이 다시 그다랴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왕족이라 알려진 이스마엘도 있었고, 오늘 본문 말씀에도 나오는 군지휘관인 요하난과 스라야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포함한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은 그다랴의 다스림을 받으며 큰 탈 없이 살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스마엘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모르지만, 그달랴와 그를 따르는 유다 백성들을 살해하고, 일부 바벨론 군사들까지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달랴를 따르던 많은 백성들을 잡아 암몬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하난을 포함한 군지휘관들은 암몬 땅으로 향하고 있던 그들을 추격하였고, 그 결과 사로잡힌 백성들은 구출하였지만, 이스마엘과 그 부하들은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요하난을 포함한 군지휘관들과 구출된 백성들은 애굽으로 피신하고자 했습니다. 바벨론이 세운 그달랴나 바벨론 군사들을 이스마엘 일당이 죽였으므로, 그들은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으로 향하면서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들이 갈 길과 행할 일을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예레미야 426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좋든지 그렇지 않든지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자신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훌륭한 믿음의 고백도 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10일 동안 열심히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들이 살던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부터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애굽으로 피난을 가면 칼과 기근, 전염병과 같은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요하난을 포함한 군지휘관과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던 그들이 엉뚱한 말을 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이들의 말을 쉽게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하나님깨서는 애굽으로 피하여 가지 말라고 네게 말씀하셨을 리 없다. 네가 그렇게 말한 것은 바룩이 꼬드겨서 우리로 하여금 바벨론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붙잡혀 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한 마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애굽 땅으로 가지 말라고 하셨을 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거짓말한 이유는 자신들이 바벨론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죠?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든 반드시 순종할 것이고,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그들에게 복이 될 것이란 그들의 장담이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요하난이나 군지휘관들, 그리고 백성들은 왜 예레미야가 거짓말을 한다고 몰아붙이며,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으로 가야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으로 가면 바벨론의 힘이 미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으면 바벨론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벨론이 세운 그달랴나 그 군사들을 이스마엘 일당이 죽였으니, 그 분노를 자신들에게 쏟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 땅에 머물러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땅에 있으면 죽거나 바벨론 땅으로 끌려갈 것이 눈에 선한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는 응답은 애굽으로 가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써 외면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른 말이라고 하더라도, 꼭 필요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이나 쓸데없는 말이라 여깁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말만 그분의 말씀이라 인정하고 들으려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하고 은혜가 되는 말씀은 두 손을 들고 환영하지만, 바른 길로 이끄시기 위해 하시는 충고나 질책의 말씀에는 인상을 쓰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칭찬만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찌 축복과 은혜의 말씀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때에 따라서는 꾸중도 하실 수 있고, 따끔하게 혼을 내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온전한 주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입에 쓰고 행하기가 어렵더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뜻과 다르더라도 따라야 합니다. 자신에게 큰 손해가 될 것 같아도 행해야 합니다. 무섭고 내키지 않더라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에는 잘 되는 길이고 복이 되는 길입니다. 요하난이나 백성들도 애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생각이 맞는 것입니다.

 

또 하나 여호난을 포함한 군지휘관들이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단하고 있었습니다.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말씀이 어떠하리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뜻은 확고했습니다. 죽거나 포로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응답하시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자신의 생각과 뜻 안에 가두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잘것없는 인간의 틀에 가두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뜻에 따라 변하시거나 행동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일이거늘,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 뜻에 따라 말씀하시고 행하시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수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꼬리가 머리를 흔들려는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선입견 없이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뜻과 생각은 순수하지 못합니다. 온갖 때가 묻어 있고 탐욕이 덕지덕지 묻어 있습니다. 이런 자신의 뜻과 생각이 개입될 경우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들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잘못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뜻과 생각을 비우고,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간적인 생각, 욕심, 소망, 기대 등등 이런 것은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떠나려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리로 가지 말고 그 땅에 그냥 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멍에를 당신의 백성들이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미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도 계속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7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유다 왕에게 전하며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거듭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 나라를 섬기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벨론이 여러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의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유다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상숭배를 포함한 온갖 죄 가운데 있던 유다를 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벨론으로부터 유다가 당하는 온갖 재난과 박해는 하나님의 징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하여 유다에게 지우신 멍에입니다.

그 누구라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을까요? 피하고 도망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하게 그 징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리고 그 징계를 통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경우, 하나님의 징계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벨론의 지배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회복의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유다 백성인 요하난이나 군지휘관, 그 땅에 남아 있던 백성들도 바벨론의 멍에를 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피신하여 바벨론의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나 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 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죄와 허물을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을 기꺼이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두렵고 겁이 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땅에 머물러 살아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 나오는 요하난과 아사랴 같은 군지휘관들과 백성들은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철석같이 맹세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그들은 바벨론의 핍박이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려는 뜻이 확고했고, 이런 그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또 자기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또 미리 하나님의 응답을 자기들 멋대로 예상하고 그것이 빗나가자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뜻대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악한 행동을 되풀이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설혹 그 말씀이 우리에게 불리하고, 또 그 말씀대로 행하면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는다고 하더라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과 뜻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니 미리 하나님의 말씀을 예단하지 말고, 또 우리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징계도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시면 아프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잠언 311절과 12절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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