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겔 8:17-18)
조나단 에드워즈가 지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완고한 임금을 대단히 격노케 한 신하는 무서운 고문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위엄과 능력에 있어서 세상적으로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능한 창조주와 임금 되신 분의 진노에 비하면 너무나 약하고, 먼지 속에 있는 멸시할 만한 벌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장 크게 노를 발한다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모든 왕들은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미움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할 때 참으로 멸시할 만한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분의 진노는 세상 왕들의 진노보다 훨씬 더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왕들의 위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듯이 말입니다.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사 59:18)”
하나님의 격노하심이여! 여호와의 맹렬하심이여! 오, 그것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요! 그런 표현 속에 어떤 것을 함축하고 있는지 누가 마음으로 생각하며 말로 발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고 독생자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 가운데 살면 그냥 계시지 않습니다. 그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징계의 매를 드십니다. 그래도 돌아서지 않으면 진노하십니다. 그 진노는 참으로 맹렬하고 무시무시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늘 기억하고 두렵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죄와 허물까지 사랑하시지는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진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께서 직접 택하시고 너무나 사랑하시는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진노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무슨 일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니 유다 백성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유다 백성들이 사는 그 땅이 폭행으로 가득하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폭행은 꼭 상처를 입히거나 다치게 하는 난폭한 행동만을 가리키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고통과 불이익을 주는 모든 행동이 포함되겠죠. 이를테면 거짓이나 사기, 갈취, 억압, 협박, 폭력과 같은 행동을 하거나 이를 통하여 각종 이익을 얻는 모든 행위들이 해당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넓게는 고아나 과부, 나그네와 같은 약자들을 돕지 않고 외면하는 행동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유다가 하나님의 공의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힘 있고 가진 자들이 탐욕을 채우려고 속이고 빼앗고 억압하는 일이 그 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힘이 없고 가난한 자들은 빼앗기고 억압을 당하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또 마음 한 구석에는 분노가 쌓이지 않겠습니까? 왜 아니 그럴까요?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낙원을 이루며 살기를 바랐는데, 서로 싸우고 뺏고 괴롭히면서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노엽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코에 두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죠? 당시 페르시아 지방에서는 태양신을 섬기는 자들이 태양을 향하여 기도할 때 종려나무나 석류나무 가지를 코앞에 대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들을 본받아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증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우상숭배가 이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져 왔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가증한 우상숭배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크고 많다는 것이고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우상을 숭배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에스겔 18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유다 백성들의 우상숭배 모습을 이상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모습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성전의 북쪽을 향한 문에 우상을 세우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여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둘째, 온갖 벌레와 불결한 짐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벽에 그리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이 그 우상들을 향해 기도하며 섬기고 있었습니다.
셋째, 성전의 북문 어귀에서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담무스는 당시 바벨론 사람들이 생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믿었는데, 바벨론 사람들은 이 신이 4월에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이듬해 봄에 소생하여 만물을 소성케 한다고 믿었대요. 그래서 담무스가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4월에는 이를 슬퍼하며 애곡하는 의식이 행해졌는데, 유다 사람들도 이를 본받아 성전 문 앞에서 이런 의식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넷째, 성전 안뜰의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태양에게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야말로 우상숭배가 일상화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사실상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이 말씀은 참으로 크고 많다는 말이고, 계속하여 행한 것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하실 수 없다는 것이고, 행한 대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러한 뜻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본문 1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우선, 하나님께서는 분노로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분노하심으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죄악을 범했으므로 그 행위대로 갚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이 얼마나 맹렬할까요? 얼마나 두렵고 무시무시할까요? 또 하나님의 분노 앞에 누가 견딜 수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입니다.
둘째, 불쌍히 여기지도,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에게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일까요? 가증한 유다 백성들에게 그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불쌍히 여기지도,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은 유다 백성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자녀들이 아니라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유다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그들이 자초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유다 백성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분에게서 멀어지고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셋째, 큰 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듣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심판을 돌이키지 아니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울고 불며 소리치고 매달려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유다 백성들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데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너무너무 무섭고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심판을 견디며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울어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끝까지 기다리시지는 않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떠나가고 긍휼 없는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자비하시고 또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을 무시하고 계속하여 죄악 속에서 살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네가 행한 가증한 일이 어찌 적다 하겠느냐? 라고 하실 정도로 노하시면, 이제 분노의 심판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거나 긍휼을 베푸시지도 아니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매달려도 듣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안에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분 외에 다른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우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죄악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멀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자비하심과 긍휼함 속에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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